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10.26 사건 (문단 편집) ===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다 === 법정에서 김재규 본인이 한 주장. 김재규는 재판 과정에서 항상 국민의 민주화 요구를 억압하는 박정희 정권에 염증을 느껴서 독재 종식을 위해서 박정희를 암살했다고 주장했다. 이전에 바로 부마항쟁이 일어나서 김재규가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러 부산, 마산 지역으로 내려갔는데 거기서 큰 충격을 받고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으로 이 정권을 막아야겠다고 결심했다는 설이다. 실제 김재규는 1971년 대통령 선거 다당시 박정희에게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국민에게 약속하라고 건의했다고 한다. 물론 이것 역시도 김재규 개인의 주장이다. 김재규 자신도 유세 현장에서 자신이 건의했던 내용을 말하면서 박정희를 믿었다고. 그러나 약속을 어기고 유신 헌법이 선포되었고 김재규는 부하들 앞에서 박정희가 다 망쳤다고 노골적으로 불편한 심정을 드러냈다고 한다. 유신이 선포된 이후 당시 3군단 연대작전 오순춘 참모는 김재규 군단장이 실제 박정희를 연금하려 모의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박정희가 3군단에 순시하러 왔을 때 박정희를 연금하여 하야 성명을 내도록 강제하려 준비했다는 것. 또, 지금은 고인이 되신 김수환 추기경은 유신 정권체제에서 김재규 정보부장과 대화를 하면서 박정희를 환자에까지 비유를 하는 표현에 놀랐다고 한다. 당시 김재규는 김수환 추기경에게 청와대에 들어와서 박정희에게 조언해 달라고 하면서 유신 체제를 바꾸는 제3의 안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김재규가 과연 정말로 민주주의에 관심이 있었는지, 아니면 단순히 자기 합리화를 위해서 즉흥적으로 외친 것인 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논쟁이 진행 중이다. 다만 김재규를 다룬 재판이 전두환의 압력을 받아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였음을 감안하면 김재규의 목적은 명확하게 규명되었다고 볼 수 없다. 그가 받은 재판으로 목적이 명백히 규명되었다고 한다면 숱한 사법살인도 옹호될 것이다. 이것 외에도 김재규의 집안에서 '자유 민주', '대의' 등을 적은 붓글씨가 발견되기도 했으며 이를 근거로 그가 민주화에 대한 관심이 깊었다는 견해가 있지만, 부정하는 견해도 많기 때문에 지속적인 논쟁이 진행 중이다.[* 자유나 민주, 대의라는 단어들은 박정희 정권 시절에도 주장하는 가치였다. 박정희의 여당 이름도 [[민주공화당]]이었으니... ]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